응급환자 진료의 ABC(Airway, Bleeding/Breathing, Circulation)에 우선하는 것이 W(Warning)이라고 하면서 WABC의 순서로 응급환자를 진료하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모르는 의사는 없을 것입니다.
실제 개원가에서의 상황은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이 응급환자를 보는 경우는 흔하지 않기 때문에 정말로 ABC보다는 W가 훨씬 중요하다고 대부분의 진료과 원장님들이 느끼고 있을 것 같으며, 가끔씩 정말 위험한 환자가 숨어 있는 신경과 개원의들은 warning에 대한 더 큰 공포심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응급환자에서 ABC가 가장 중요한 것처럼 우리가 실제 의학 공부를 할 때 소위 메이저 과목이라고 하는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는 가장 필수적인 과목이었습니다. 그리고 신경과 전문의들은 당연히 신경과 공부가 최우선이며, 그 외 신경외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정형외과,마취통증의학과의 영역을 많이 다루게 되니, 개원을 위해서는 탄탄한 신경과적 전문지식에 더해 내과와 앞서 말씀드린 다른 과의 영역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여 나름 철저하게 무장을 하게 될 것입니다.
병원급에 근무하면 심사실 직원을 따로 두고 청구에 관한 부분은 맡아서 하도록 하기 때문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는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개원의 생활에 있어서 실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본인의 전문과목도 아니고, 내외산소도 아닌 바로 ‘심평의학’ 부분입니다. 응급환자의 WABC처럼 심내외산소가 의학의 메이저 과목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전산업체의 프로그램에서 처방 단계에서 대부분점검이 이루어지지만, 사소한 소화제 하나라도 허가사항에 맞지 않게 사용하면 삭감을 피할 수가 없으며, 어떤 약제는 동일한 성분이라도 제약회사에 따라서, 또는 제형에 따라서 허가사항이 달라서 무심코 약을 변경했다가 뜻하지 않는 삭감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힘들게 각종 검사를 시행하고도 병명 코드를 누락하거나, 검사시행일이 조금 빨라서 전산심사에서 전액 삭감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필수적인 판독지나 검사결과지가 미비한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이 경우에는 심사에서 삭감되는 경우보다는 추후 실사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으니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심평의학은 신경과 공부만큼 또는 그 이상 잘 알아 둬야 합니다. 분야에 가장 전문가인 의사의 처방이 누군가의 잣대에 의해 평가되고 심사받고 있다는 점이 유쾌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건강보험강제지정제라는 제도 하에서 진료하고 있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과서와 참고서를 통해 내가 주로 사용하는 약제,물리치료 및 검사 처방에 대해서는 미리 주의할 점을 알아둬야 한다는 것인데, 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서 PDF 파일로 다운받아서 보실 수 있는 책자들이 있습니다(심사평가원 ->의료정보 ->간행물 ->Hira E-book).
위에 소개된 책자들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책자들이며, 자주 내용들이 업데이트 되는 관계로 수시로 확인을 요하는 심평의학의 “교과서”들입니다. 중복되는 내용들이 많으며, 실제 본인의 진료 영역과 관련된 부분들만 중점적으로 확인하면 되기 때문에 그다지 내용이 방대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약제들을 처방하기 위해서는 각 약품의 허가사항에 대한 내용들에 대해 숙지하는 것이 필요하며, 적합한 상병코드와 함께 사용하여야 하는데, 각 약품의 설명서 또는 드러그인포, 약학정보원, KIMS 등의 사이트에서 확인이 가능한데, 이것들을 심평의학의 “참고서”로 잘 활용하셔야 합니다.
심평의학에 대한 불만은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완전한 공공의료를 시행하지 않으면서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모든 나라의 의사들에게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불만은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우선은 건강보험제도라는 틀 안에서 어떻게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까 하는 노력을 스스로 해 나가면서 전체 의사집단이 힘을 모아 가는 노력을 병행해 나가는 것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2012년 7월 이후 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위탁 받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의료보험에서 진료하듯이 동일하게 자동차보험에 적용하면 당연히 인정받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이런 생각이 깨진 것은 어지럼 환자를 진료할 때였습니다. 보험에 차별을 두지 않고 같은 방식으로 진료하고 검사하여 감별진단 하였는데 인정받는 기준이 차이가 나기 시작 아니, 인정이 되지 않기 시작하였습니다.
2019년 1월, 사고 이튿날 어지럼으로 내원하여 좌측 수평반규관에 이석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정복한 환자가 있었습니다. 자보에서 진료비를 삭감하였는데, 신경학적 검사와 이석정복술은 인정했지만, VNG, cVEMP와 청력검사는 불인정한 것입니다. 불인정하는 사유에는 ‘상병,수상일 비교하여 심사조정 되었습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 무슨 황당한 소린지, 진단과정은 쏙 빼고 치료만 인정해 준다는 말인지, 또 며칠 기다려 보고 어지럼이 지속될 때검 사하면 인정한다는 말인지, 납득하기 어려운 삭감이었습니다.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기에 우선 절차대로 소명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자보는 이의신청을 해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애초에 자료요청을 해서 확인한 다음에 불인정 한 것이라 이의신청은 전혀 통하지 않았고, 다만 그 다음 단계를 가기 위해 시간을 확보하는 절차로 의미를 두었습니다. 이의신청의 결과는 오래 걸리지 않아 나왔으며, 결정서에는 ‘수상일,사고경위,의학적 타당성 등을 감안하여 인정할 수 없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다음 절차로 건보에서의 심판청구처럼 자보에서는 민사소송 또는 자동차보험진료수가 분쟁심의회가 있었는데, 후자가 당시에는 위압감이 덜해 보여서 심사를 청구하였습니다. 이 때, ‘30일 이내’라는 조건이 있어 이의신청에 대해 결정서가 도착하고, 이에 대해 불복하고자 한다면 기한 내에 심사를 청구하여야 합니다. 이 시기가 2019년 5월경이었고, 코로나 덕분에 1년을 넘어 19개월을 기다려 결과를 통보받았습니다.
분쟁심의회는 자동차보험 진료수가기준에 따라 심사하여,<사진>에서와 같이 ‘이학적검사에서 양성발작성현기증이 진단되었다 하더라도 상기 검사 시행은 타당하므로 동 건은 인정함’이라 최종 결정하였습니다. 심사청구액은 전액 인정되었지만 심사비용으로 부담금 5만원이 들었습니다.
이로서, 증상에 따라 VNG, VEMP, 또는 청력검사를 하는데 있어 수상일을 고려할 필요는 없는 것을 확인하였지만, 최종 결정에‘2019년 1월 15일 사고 후 양성발작성현기증 진단 하에 2019년 1월 16일 동 분쟁병원에 내원하여’라고 하여 저는 알지도 못하며 관련도 없는 내용이 판단 근거가 되었다고 적은 것(병원이라고는 16일에 처음 제게 왔는데 그럼 누가 15일에 사고 나자마자 진단한 것인지?)과, ‘이학적검사에서 양성발작성현기증이 진단되었다 하더라도’라는 구절을 굳이 집어넣은 것은 삭감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부여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후기